예수님의 행적이 기록된 사복음서의 마지막 장에는 저마다 주님의 고귀한 마지막 유언이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하셨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 성에 머물며 성령을 기다라” 하셨으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28장의 말씀은 주님이 교회에 주신 가장 구체적이고 중대한 사명으로, 우리는 이를 ‘위대한 지상대명령(The Great Commission)’이라 부릅니다.
주님은 이 명령을 내리시기 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선언하십니다. 죽음을 이기신 하늘의 영적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이제 그 권세를 의지하여 우리에게 위대한 사명의 길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사명은 명확합니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주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르침의 목적이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삶에서의 실천(지키게 함)’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 위대한 사명의 최전선에 서 있는 단어가 바로 오늘 설교의 제목인 “가라(Go)”입니다. 한국말로는 그저 짧고 평범한 단어 같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단어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제자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치라”는 동사는 모두 우리가 주체적으로 행해야 하는 ‘능동태’입니다. 그러나 오직 “가라(포레우테인테)”라는 단어 하나만큼은 ‘과거분사형 수동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갈지 말지 선택해 보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존재들이니, 당연히 가야만 한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먼저 가지 않고서는 제자를 삼을 수도, 세례를 줄 수도, 가르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가라’는 명령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로마의 시퍼런 칼날 앞에서도 그들은 안락한 동굴에 숨지 않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아파하고, 그들의 짐을 대신 지며 삶으로 복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신앙의 야성이 무너진 기점이 있습니다. 바로 4세기 무렵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삼으면서부터입니다.
그전까지 교회는 핍박 속에서도 힘차게 세상으로 향했으나, 국교가 된 이후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람들이 교회로 물밀듯 밀려 들어왔습니다. 대형 교회가 세워지고, 재정이 넘쳐나며, 성직자들의 권위와 명예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화려하고 거대한 성전을 짓는 경쟁이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이것이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진짜 부흥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돈은 넘쳐났지만, ‘가라’는 야성을 잃어버린 채 안에서부터 급격히 타락하고 썩어갔습니다. 인간의 법과 제도가 만든 가짜 부흥의 그림자였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어떨까요? 캐나다 토론토에서 현지 백인 목회를 하는 제 친구 목사는 얼마 전 주일, 안타깝게도 아름다운 교회의 문을 닫는 안건을 논의했다고 합니다. 제가 있는 미국 장로교(PCUSA) 역시 최근 몇 년 사이에 교단 내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습니다. 작은 교회들은 목회자가 없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곳이 수백 개에 달합니다. 과거 선배들이 이룩해 놓은 안락함에 안주한 채, 더 이상 희생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가지 않는’ 교회의 서글픈 자화상입니다.
교회가 다시 살아날 방법은 오직 하나, 주님의 ‘성육신(Incarnation)’을 닮아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만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의 아픔과 영적 갈급함 속으로 친히 몸을 입고 걸어 들어오셔서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우리끼리 높은 성벽을 쌓고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안으로 들어오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들의 문화 속으로, 그들의 아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대학 선교를 품고 있다면,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관과 다를지라도 그들의 고민을 포용하고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PCUSA 교단 사무총장을 지내신 그레이디 파슨스 목사님은 “교회가 소망을 찾으려면 교회 안의 사람들과 신앙을 나누는 것뿐만 아니라, 교회에 나오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는 가라” 하신 주님의 명령은 교회의 생존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당장 우리 눈앞에 있는 U of A 대학교에만 해도 100명이 넘는 한인 성도와 청년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와 아픔 속으로 겸손히 걸어 들어가 복음의 손길을 내미는, 살아있는 성육신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