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을 받은 자들: 전통이라는 이름의 선입견을 넘어 (고린도전서 1:1-9)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인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당시 그곳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교회 내의 파벌 분열, 도덕적 타락, 성도 간의 법적 소송, 우상 제물과 할례를 둘러싼 신학적 논쟁, 심지어 성찬식 포도주에 취하는 소동까지 일어났습니다.

이 중에는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역사적 배경도 있지만, 본질적인 원인은 현대 교회의 모습과 소름끼치도록 닮아 있습니다. 특히 본질이 아닌 전통이나 문화적 차이를 가지고 끝없이 논쟁하고 다투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아틀란타 성가 합창제에서 한국 민요 가락의 성가곡인 “어허라디야 상사디야”를 사물놀이 악기와 함께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대다수 성도는 신선하고 은혜롭다고 좋아하셨지만, 일각에서는 어떻게 거룩한 예배용 음악에 민요 가락을 쓰고, 무당들이나 쓰는 장구와 꽹과리를 교회에서 연주할 수 있느냐며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셨습니다.

과연 악기나 멜로디 자체에 선함과 악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런 논쟁은 서양 교회사에서도 천년 넘게 반복되어 온 오래된 선입견입니다.

중세 시대 교회 음악에서는 오직 남성의 목소리로만 부르는 ‘아카펠라’만 허용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여성의 성가대 참여는 무려 1900년 동안 금지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여성의 높은 음역대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어린 소년을 거세하여 노래하게 한 ‘카스트라토’라는 비극적인 역사까지 존재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여성이 성가대에 서게 된 것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졌습니다.

오늘날 당연하게 여겨지는 피아노와 오르간도 처음 교회에 도입될 때는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18세기 초 피아노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술집이나 살롱에서 연주하는 세속적인 악기를 거룩한 교회에 들여올 수 있느냐”며 분노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오직 오르간만 거룩한 악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오르간 역시 15세기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서커스나 축제에서 쓰이던 세속 악기라며 극심한 논쟁을 겪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담은 마틴 루터의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의 아름다운 곡조 역시, 본래 당시 독일 사람들이 술집에서 부르던 유행가 가락이었습니다. 루터는 세속의 멜로디에 거룩한 복음의 가사를 입혀 최고의 찬송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본질이 아닌, 자신에게 익숙한 전통과 환경을 진리라고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본질은 옛 주거지를 고집하는 아쉬움이 아니라, 시대 속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구조선이 되는 것입니다. 악기나 형식은 도구일 뿐, 그 자체가 선하거나 악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이 수많은 결함과 흠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장 2절에서 그들을 향해 위대한 선언을 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그들의 행실은 전혀 거룩하지 않았고 교회는 엉망진창이었지만, 바울은 그들을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성도’라 불러줍니다. 이는 그들의 노력이나 자격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성도(Saint)인 것은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늑대처럼 사납고 더러운 우리 존재 위에,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가죽 옷을 지어 덮어 주셨기 때문입니다(계 19:8).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누더기 같은 허물이 아닌 예수의 흰 옷을 보시고 우리를 ‘거룩한 백성’이라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의 선언을 전제로 삼은 뒤, 편지의 마지막에 이르러 교회는 ‘하나의 몸’이며,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결국 ‘사랑’이라고 결론지어 가르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의 피 값과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본질이 아닌 형식과 전통의 선입견을 가지고 형제를 정죄하거나 분당하여 논쟁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지식이 아니라,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남의 부족함을 덮어주고 품어주는 행동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룬 것처럼, 서로의 허물을 사랑으로 덮어 주며 온전한 하나의 교회를 이루어 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