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며 매번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본래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으로 가득 찬 아름다운 곳입니다.
지금 이곳 투산은 겨울이지만, 벌써 길가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봅니다. 젊은 시절에는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가던 꽃들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바라보니 꽃들의 형상과 색, 모양 그 자체가 완벽한 하나님의 아름다움임을 깨닫게 됩니다.
몇 년 전, 사택 뒤뜰에 잘라놓은 나뭇가지 더미 속에서 새 둥지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갓 부화한 새끼 새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어미 새는 저를 보자마자 몸의 털을 바짝 세우고, 마치 스프링이 진동하듯 기이한 소리를 내며 경계했습니다.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 새의 본능을 보며, 피조물 세계 속에 숨겨진 고귀한 사랑의 원형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온통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랑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시대의 소중한 영성가인 헨리 나우웬 사제의 삶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은 묵상을 줍니다. 그는 하버드와 예일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신학을 가르치던 세계 최고의 지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마지막 장을 캐나다의 정신장애인 공동체인 ‘라르쉬’에서 보냈습니다.
그가 쓴 책 《예수님의 이름으로》를 보면,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장애인 공동체에서 느꼈던 철저한 무력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곳의 장애인들은 하버드나 예일이 어떤 곳인지 몰랐고, 그가 가진 최고의 학문과 명성, 인맥은 그곳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늘 완벽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나우웬은 자신의 모든 조건이 무력화되는 순간 깊은 불안감을 느꼈다고 고백합니다.
그곳의 지체들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의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돌변하여 따뜻하게 안아주다가도 갑자기 주먹이 날아오고, 환하게 웃다가도 눈물을 쏟아내는 상식 밖의 일상이 반복되었습니다. 나우웬은 그곳에서의 삶이 마치 인생을 맨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과정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수년간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몸으로 섬기는 동안, 그는 세상의 성취나 지식과 상관없이, 비로소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랑은 결코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사랑을 책으로 배워서 우리를 헌신과 희생으로 키우신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한 지식은 넘쳐나지만, 정작 삶에서의 실천은 형편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 결과 이 시대의 많은 영혼과 자녀들이 정서적·영적 장애로 고통받으며 “나를 좀 사랑해 주세요”라고 눈물로 절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희생적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그 십자가 사랑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롬 5:1). 하지만 사도 바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로마서 5장 3절에서 무거운 말씀을 던집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구원은 달게 받으면서도, 그 사랑의 본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고난’은 슬그머니 빼버리곤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영양가 있는 음식은 버리고 단것만 쏙 빼먹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은 은혜뿐만 아니라 아픔까지도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쓴 사도 바울은 수없이 매를 맞고, 돌에 맞아 죽을 뻔했으며, 배가 파선하고 주림과 추위에 노출되었던 고난의 전문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환난을 자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노련한 항해사는 거친 폭풍우가 몰려와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폭풍을 뚫고 나가 본 수많은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잔잔한 바다만 항해했다면 결코 훌륭한 항해사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탄 믿음의 배는 잔잔한 물가에서 유람하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거친 죄악의 파도 속에서 물에 빠져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 올리는 ‘구조선’입니다. 구조선은 언제든 폭풍 속으로 뛰어들 실제적인 고난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삶에서 작은 사랑부터 시작해 보기를 소원합니다. 교우들이 잘하는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칭찬해 주고, 부족한 점이 보이면 비난 대신 격려의 말을 건네주십시오.
호주의 한 행동심리학자는 평생 연구한 결과 “성인이 된 인간은 책망과 지적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으며, 오직 사랑과 격려를 통해서만 변화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잠언 10장 12절도 말씀하십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느니라.”
우리 곁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 소중한 지체들에게 상처를 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축후하시겠습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사랑은 내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사랑의 근원이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도록 기도하며, 날마다 타인의 허물을 덮어주고 격려하는 사랑의 큰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