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복음 9:35 – 10:8] 덧칠된 캔버스를 새롭게 하라: 열두 제자를 보내시며

중학교 미술 시간, 처음으로 유화(Oil painting)를 그려본 날이 기억납니다. 종이가 아닌 거친 캔버스 위에 물감을 섞어 바르는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초보자인 저는 실물과 비슷하게 그려 보려고 캔버스 위에 끊임없이 물감을 덧칠했습니다.

유화는 마른 뒤에 다시 색을 입힐 수 있어 실수를 만회하기에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일 뿐입니다. 계속해서 물감을 덧칠하다 보면 표면이 두꺼워지고 거칠어져서 결국 그림을 망치게 됩니다. 이색 저색이 엉망으로 섞여 버린 두꺼운 캔버스, 그것이 저의 첫 유화 작품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저의 마음에 무거운 질문이 다가왔습니다. ‘나의 신앙, 그리고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 이처럼 세속의 물감으로 두껍게 덧칠된 캔버스는 아닐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상으로 보내시며 당부하신 말씀은, 놀랍게도 오늘날 우리 교회의 익숙한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1. 잃어버린 반쪽, 치유의 사역

마태복음의 큰 그림을 보면, 예수님은 산상수훈(5~7장)을 통해 천국의 윤리를 가르치신 후, 8장과 9장에서 직접 행동으로 그 가르침을 살아내십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5)

예수님의 사역은 ‘천국 복음 전파’와 ‘치유’라는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루터 칼리지의 신학자 가이 네이브 주니어(Guy Nave Jr.)는 초대교회의 핵심 메시지가 ‘하나님 나라의 도래’였던 반면, 현대 서구 교회는 오직 ‘영혼의 구원’에만 편중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수님께 영혼을 구원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현실의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병과 약함을 고쳐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영혼의 구원만 외치며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은 온전한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매일 외우는 주기도문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죽어서 가는 영적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땅의 고통 속에도 임해야 합니다.

2. 물질의 유혹과 순결함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며 주신 지침 중 현대 교회와 가장 크게 충돌하는 부분은 바로 ‘물질에 대한 태도’입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마 10:9-10)

물론 사역자도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가 지나치게 물질에 연연하고, 세상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깊이 잠식되어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 6:10)”라는 말씀처럼, 교회의 결정이 하나님보다 돈에 의해 좌우된다면 그것은 이미 타락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예수님께 혹독한 책망을 받았던 바리새인들도 처음부터 타락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말씀대로 살림을 다짐했던 가장 순수한 무리였으나, 부와 권력이 쌓이면서 점차 변질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명하십니다. 지혜가 없는 순결은 무능하고, 순결이 없는 지혜는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3. 이중적 합리화라는 덧칠

미국에 처음 온 한인 이민자들을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합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한국의 가부장적 권위를 강요하면서도, 여성과 약자를 존중하는 미국의 좋은 에티켓은 외면하곤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하고 편한 것만 취사선택하는 전형적인 ‘이중적 합리화’입니다.

부끄럽게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대할 때 이런 이중적 합리화를 자주 범합니다. 물질적 축복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약의 구절들은 기쁘게 인용하면서도, 부자에 대한 예수님의 엄중한 경고는 가볍게 무시합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울 때는 모세의 영적 권위를 가져오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의 겸손은 외면합니다. 성경 해석이 충돌할 때, 우리의 최종 기준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을 외치면서도 용서하지 못하고, 조금만 손해를 보아도 분노하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이리저리 덧칠되어 엉망이 된 캔버스가 아닐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지한 화가는 캔버스에 계속 덧칠을 하다가 그림을 망치고 맙니다. 이제 우리는 그 두꺼운 합리화와 탐욕의 물감을 긁어내야 합니다.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르치신 대로 사셨고 치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맑고 투명한 복음을 다시 그려냅시다. 겸손히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참된 제자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