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제목: 사마리아 여인을 만난 예수님
성경본문: 요한복음 4:5–14
주제:
예수 그리스도 · 믿음 · 증언 · 공동체 · 화해
한 줄 소개:
예수님을 만나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가던 한 사람이
어떻게 한 마을을 예수님께 이끄는 증인이 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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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외가에 가면 그 마을에는 공동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우리들의 어머니들, 누님들이 모이던 곳입니다. 그곳에 모여 빨래도 하고, 먹을거리를 씻기도 하고 물을 길러 오기도 하면서 수다를 떠는 장소였습니다. 어렸을 적에 그 우물에 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뛰어놀다가 목이 마르면, 잠시 물 마시러 가는 정도이지 그곳에서 얼쩡대는 것은 왠지 남자가 끼어 있어야 할 곳이 아닌 듯한 장소였습니다.
우물가에 모인 우리들의 어머니나 누님들은 그곳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집, 저 집 이야기를 하며, 온 동네의 소식이 이곳에 모아지고 퍼져 갑니다. 아래 집 큰아들의 성공한 얘기나, 저 싸리나무집 청년이 사고 친 얘기, 저 탱자나무집 아저씨가 바람 핀 얘기까지 고스란히 듣는 곳입니다. 그렇게 모여 깔깔대고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고, 마음 아픈 얘기를 나누면 마음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좋은 일만 있었겠습니까, 때로는 불편한 말다툼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우물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는 장소도 이와 같은 우물가입니다. 물을 찾아 모이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제가 자란 그곳과는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곳은 사마리아 땅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듯 사마리아는 남쪽 유다와 북쪽 갈릴리 지역 사이에 있는 지역입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오랜 역사적·종교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서로 자신들이 참된 이스라엘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고, 어디에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가를 놓고도 대립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유대인들이 바빌론에서 귀환 후 성전을 다시 재건할 때에, 사마리아인들이 함께 돕겠다고 나서는데도 유대인들이 전혀 붙여 주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때로는 먼 길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마리아 땅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것입니다. 차별과 미움이 있는 곳에 들어가셨습니다.
이 사마리아 땅에 예수님께서 찾아간 곳이 우물가입니다. 우물가는 당시 유대 땅에서도 여성들의 공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문화에서는 낯선 남성이 여성을 만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곳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왜 정오에 혼자 물을 길으러 왔는지 본문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복잡한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회적 경계 속에 있던 여인에게 찾아오십니다. 여러 번의 결혼과 복잡한 삶의 사정을 안고 살아가던 여인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십니다
보통 사람은 좀처럼 자신이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금만 자신이 살아온 생활양식이나 풍습에서 벗어나면, 마치 무슨 죄를 진 사람처럼 대하고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제가 다닌 신학교의 한 교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남미의 작은 섬에서 출생해 미국으로 유학 와 신학 박사를 마치고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분이 남미에서 자랐으니 그곳에서 살아온 생활양식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집안에서의 식탁 문화는 자신이 자란 집의 식탁 문화와 비슷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이 교수님이 파티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날의 파티 분위기는 음식을 접시에 담아 이곳저곳에서 대화를 나누며 먹는 그런 파티였습니다. 남미에서 온 젊은 교수가 좀 멋쩍어 음식을 가지고 한쪽 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성 한 분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습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큰 거실에서 식사를 하고 다른 방에서도 몇 명씩 모여 친교를 나눕니다. 이 교수님이 식사를 하다가 그만 큼지막한 밋볼을 카펫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 밋볼을 손으로 집어 ‘호, 하고’ 입에 넣어 먹었습니다. 그러자 같이 있던 여성이 갑자기 까~ 하고 소리를 친 것입니다. 이 비명으로 인해 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 다들 모여들었습니다. 고함을 치는 장소에는 두 남녀만 있었기에 무언가 순식간에 이상한 흐름이 흘렀습니다. 그런 난처한 상황에서 이 교수는 무어라 말할 수도 없고, 당황스러워 그만 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남녀 단둘이 있는 곳에서 여성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니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저도 어려서 음식이 귀한 때라, 음식이 땅에 떨어지면 집어먹었습니다. 심지어 흙에 떨어져도 물로 대충 씻어 먹었던 것이 우리의 당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그 교수님이 하신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되죠. 그 교수님의 행동이 그냥 웃고 넘길 수 있는 일이었지만, 미국에서 바닥에 떨어진 밋볼을 주워 먹는 일은 흔한 모습이 아닙니다. 아마도 그 여성은 그런 모습에 너무 놀라 무의식 중에 고함이 나온 것입니다. 서로 다른 문화의 배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 간에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당시 문화적 터부를 깨는 그런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그런 곳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관심 있게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의 포인트는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을 알기는 알았고, 메시아의 이야기는 듣기는 들었지만, 자신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변하는지 한 번 보시겠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는 5절부터 시작하여 42절까지 이어집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예수님을 누구라고 불렀습니까? You are a Jew, 유대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그가 11, 15절에는 Sir,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19절에서는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시자, 29절에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달려가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외칩니다. 결국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마을에 들어가 전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39-40절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게 되며, 그들은 예수님을 초대하여 이틀 동안 함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처음에는 그 여인의 증언을 듣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이틀을 함께하며 직접 말씀을 들은 후에는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고 고백합니다. 한 사람의 믿음이 공동체의 믿음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일이 불과 이틀 사이에 한 사람의 만남이 한 마을의 믿음으로 확장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어진 초점은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곧 영적인 변화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14절에 있는 말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23절의 말씀에는,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영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영의 말씀을 하시면서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신비의 영을 어떻게 받는지에 대한 말씀은 없습니다. 앞장에 보면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영을 어떻게 받는지를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시고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형식적인 예배와 제사 등, 틀에 박힌 제도가 아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는 사마리아인이 예배를 드리는 그리심산도, 유대인이 예배를 드리는 예루살렘 성전도 아님을 말씀합니다. 오히려 참된 예배가 드려지는 곳은 영으로 예배가 드려지는 곳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아가면서 이 여인의 삶에는 새로운 믿음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의 말씀에 집중해야 하나님이 누구인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그가 무슨 말씀을 하시고 가르치고 행동으로 보여주셨는지, 성령은 누구이고 어떻게 성령이 일하시는지 집중이 필요합니다.
전에 회오리바람에 대해 다큐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회오리바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볼 만합니다. 회오리바람을 보면 위에서 내려오는 소용돌이가 먼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땅 가까이 내려와 지상의 바람과 만날 때 비로소 눈에 보이는 강한 회오리가 됩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시고, 말씀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여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 앞에서 인간의 응답도 요구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먼저 찾아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질문하고, 생각하고, 마침내 그분을 받아들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집중하는 능력은 대단합니다. 그는 짧은 예수님과의 대화 가운데 메시야이신 예수를 알게 됩니다. 영적인 만남은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는 사람을 피해 숨어있었지만 그가 예수님을 알게 되자, 자신의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에 들어가 소리칩니다.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외칩니다. 그 뜨거운 햇빛 때문에,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낮잠을 청하는 시간에 ‘예수님께 와서 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여인에게 영적인 확신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사람이었지만 그 여인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믿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초대하여 이틀간이나 붙잡아 두고 그의 말씀을 들으며 믿음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선을 그었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도 사회적 경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경계를 넘어 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이 변했고, 한 마을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우리 모두 이 세상 속에서 분리와 차별이 있는 곳에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치유하고 화해하는 것처럼 그런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고 그 말씀에 응답하며,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주님을 따라 세상의 경계를 넘어가고, 그 만남을 통해 한 사람을 넘어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